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재조명
김영삼 ‘역사 바로 세우기’
광화문 궁궐 복원 사업 진행돼

한때 일제 강점기 한국 통치의 상징으로 일본이 세웠던 건물은 오늘날 한국의 결정으로 소멸됐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된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광복 이후에도 50년이 넘게 경복궁 앞에 버티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어떻게 철거됐을까?
1910년 일제는 조선을 식민 지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설립하며 경복궁 근정전 바로 앞에 해당 건물을 설치했다. 특히 이 위치는 민족의 자존심인 경복궁을 물리적으로 가로막아 우리 민족의 전기를 끊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즉, 조선총독부 건물 자체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무시하고 한민족을 억압하기 위한 일제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당초 조선총독부는 입법, 사법, 행정 전반의 권한을 모두 가진 막강한 권력 기관이었다.

이 권력을 필두로 조선을 식민 통치한 일제는 조선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식민법제와 제도를 만들어 조선인을 핍박했다.
특히 이 시기 수립된 제도와 기구가 해방 뒤에도 한국 사회에 잔재로 남았다. 이에 광복 이후 해당 건물을 둘러싼 철거 요구가 이어져 왔다.
역대 정부 역시 해당 건물을 철거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건축물 보존 논란과 함께 일본과의 외교 문제, 역사적 증거물로서의 가치 등을 고려해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청사의 해체가 논의된 시점은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의 상징을 서울의 심장부에 둔다는 것이 말이 되냐?”라고 밝히며 철거 지시를 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추진되지 못했다.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이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거대한 건물에 속하고, 예산을 써서 정부 청사를 신축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이를 정부 청사로 사용하겠다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다만, 심리적인 거부감 등을 이유로 공식 정부 청사로 사용하지 않고 여러 논의 끝에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로 사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중앙청 철거를 지시하면서 재차 철거론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본 근대 건축사 연구단체 ‘메이지 건축 연구회’가 해당 건물을 두고 “동아시아 근대 건축물 역사상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며 철거를 반대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조선총독부 철거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김영삼 정부는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과 함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시기에도 일본 측은 철거에 심각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국민의 70%가 철거를 찬성했지만, 역사적 가치 때문에 학계에서 반발이 일어나는 등 철거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약 2년이 지난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 돔 철거가 시작된 이후 1년 3개월의 시간을 거쳐 지상 부분의 철거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후 1996년 11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아 우리 민족의 애환으로 남았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완전히 철거됐다.
한편, 그렇다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현재 뭐가 들어섰을까?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경복궁 복원 사업이 진행됐다. 이는 광화문(경복궁의 정문) 복원 사업이 이어진 것이다. 지난 2010년 삐뚤어져 있던 광화문은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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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는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