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 KS 준우승
형제의 난→한화 이글스
한화 전반기 ‘대기록’

한화이글스의 역대 두 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 도전은 2위로 마무리되었다. 21세기 첫 우승 도전은 아쉽게 막이 내렸지만, 이번 시즌 한화의 기록은 역사적이었다.
지난 31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개최된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 시즌 KS’에서 한화이글스는 LG트윈스와 5차전에서 패배하며 최종 2위로 시즌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화이글스는 20세기 한국시리즈 마지막 우승의 주인공이다. 팀의 첫 출발은 한화 이글스가 아닌 ‘빙그레 이글스’였다. 대전과 충청도를 연고로 한 빙그레 이글스는 1986년 프로야구 무대에 본격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파격적인 주황색에 줄무늬가 들어간 유니폼을 채택하며 시작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2년 대전 구장 최다 관중
‘한화 이글스’의 탄생 서막
빙그레 이글스는 프로 데뷔 3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저력을 뽐냈다. 당시 해태-삼성의 경쟁 구도를 뒤흔든 괴물팀의 등장이었다. 1992 시즌 대전 구장의 입장 관중 수는 무려 380,391명에 달하며 이 기록은 2010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이글스’로 탈바꿈한 이야기는 90년대 초 한국화약 주식회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김종희 한국화약 주식회사 창업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장남 김승연은 29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화약 주식회사의 회장이 되었다. 당시 차남 김호연은 공군 학사장교로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기에 경영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한국화약 형제의 난
형제간 재산 분할 소송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은 90년대로 접어들며 본격화했다. 한국화약 주식회사 내 차남 김호연이 최대 주주로 있던 빙그레가 계열 분리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이 돌며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차남 김호연은 한국화약 주식회사 내 유통 사업(한양유통)을 맡고 있었는데, 1992년 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당시 한양유통 사장이었던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을 경영 능력 부족을 이유로 직위를 박탈시켰다.
이에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1992년 한화에서 빙그레를 분리 독립하며 형제간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바뀐 것도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있던 1993년의 일이다. 빙그레 이글스의 모기업 한화그룹 내 상속 분쟁으로 빙그레가 한화그룹을 떠나며 야구단 운영 지속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화, 20세기 마지막 KS 우승
김호연, 한화 ‘완전’ 이별
이후 형제의 법정 공방은 3년 6개월간 지속되었지만, 1995년 어머니 故 강태영 여사의 칠순 잔치에서 만나 둘은 결국 화해했다. 1994년부터 새로운 이름으로 리그에 참가하게 된 한화이글스는 5년간 두 차례 포스트 시즌 진출에 그쳤고, 1999 시즌 결국 사상 처음이자 20세기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해 2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의 지분을 전량 매도하며 한화와 완전히 결별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매각을 장기간 갈등을 겪었던 한화그룹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식품·유통이라는 빙그레의 본질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따라서 ‘빙그레 이글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화 12연승 대기록
구단 최다승→준우승
올해 한화 이글스는 부활의 서사를 꿈꾸며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 4월 초까지 리그 10위로 최하위를 면치 못했던 한화 이글스는 4월 말 kt 위즈와의 홈경기에서 1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화의 12연승은 1992년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 시절 14연승을 기록한 이후 무려 33년 만이다.
전반기에 돌풍을 일으킨 한화는 전반기 선두에 올랐고, 8월 초까지 단독 선두를 유지했다. 하반기 급성장한 LG트윈스에 결국 한화 이글스는 정규리그 우승 타이틀을 내주게 되었으나, 한화는 구단 최다승을 달성하며 엄청난 기록을 완성했다.
‘만년 하위권’에서 기분 좋은 반란으로 잊을 수 없는 가을을 보낸 한화 이글스가 내년 코리아 시즌에서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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