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침체 겪던 국내 정유업계
글로벌 정제설비 폐쇄 영향
국제 유가 상승으로 반사 이익

최근 유가·정제마진 하락에 대규모 실적 악화를 겪은 국내 정유업계가 국제 정세 변화와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미국·유럽의 정제설비 축소 및 폐쇄가 국내 정유사의 수출 확대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란-이스라엘 간 군사 충돌로 촉발된 중동 불안은 국제 유가에 영향을 주면서 래깅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1조 원대 실적 회복까지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제설비 축소와 정책적 수요 증가의 수혜

유가 하락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정유업계에 반등 기회가 찾아온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의 정제설비 폐쇄가 있다. 올해 미국은 하루 54만 7,000배럴 규모의 정제설비를 폐쇄할 예정이며, 유럽도 하루 40만 배럴 규모의 정제능력을 잃게 된다. 이는 각각 전 세계 정제설비의 0.5%, 0.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정유 공급이 위축되면서 국내 정유사의 수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최근 정제마진은 연초보다 약 2.5배 상승했으며, 국제유가는 60달러 선까지 하락하면서 원가 부담도 크게 줄었다. 국내 정유사들이 저렴한 원유로 제품을 생산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진 것이다.
수출 확대의 또 다른 동력은 미국의 전기차 세제 혜택 축소다. 미국 연방 하원은 전기차에 대해 연간 250달러, 하이브리드에는 100달러의 연방 등록 수수료를 부과하는 예산안을 승인했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세액공제도 내년까지로 축소됐다. 이에 따라 내연기관 차량 수요가 다시 증가하면서 휘발유와 경유 소비 확대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항공유 수출 급증…美 수출량 4년 만에 최대

특히 주목할 품목은 항공유다. 2024년 기준 항공유는 국내 정유업계 수출량의 약 18%를 차지하며 최대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한국은 2023년 기준 306만 킬로리터를 수출하며 미국 최대 항공유 수입국으로 꼽힌다.
특히 올해 초 278만 배럴 수준이던 항공유 수출량은 3월 304만 배럴, 4월 382만 배럴로 꾸준히 증가했다. GS칼텍스가 119만 배럴, SK에너지가 94만 배럴, 에쓰오일이 93만 배럴을 수출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간 미국으로 수출된 항공유는 430만 배럴이다. 이는 2021년 8월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정유업계는 이번 기회를 통해 미국 내 수출 기반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유는 가격 경쟁력이 높아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미국 일부 정제설비 폐쇄는 단기 수출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위기와 재고평가이익 기대

여기에 이란-이스라엘 간 긴장 고조도 국내 정유사에 재고평가이익을 안겨 주면서 이른바 ‘래깅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래깅 효과는 저가에 들여온 원유를 보유한 상태에서 유가가 상승하면서 재고 자산의 평가액이 높아져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효과를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일부 정유사는 원유 구매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 간 시차에 따른 수익 증가를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상황이 반전될 수 있어 정유업계에서는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가 급등은 원가 부담으로 이어져 정제마진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 속 유가 상승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석유 수요를 줄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국내 정유사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정유업계는 이번 수혜가 단기적일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항공유 등 주력 수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인 공급 안정성과 수출 기반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유업계, 친환경 흐름 속 탈탄소 주도 나서

이에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지속가능항공유(SAF)’와 ‘바이오선박유’에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친환경 흐름 속에 올해부터 유럽연합(EU)이 SAF 사용 의무화를 시행하면서 저탄소 항공연료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선박 연료 시장에서도 바이오선박유가 기존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부상하며 탈탄소 전환의 핵심 에너지로 떠오르고 있다.
정유업계는 SAF와 바이오선박유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연료 사업 확대를 통해 기존 화석연료 중심 수익 구조에서 탈피하고,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는 단기적인 실적 개선과 함께 탄소중립 목표와 지속 가능한 발전(ESG) 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규제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SAF와 바이오선박유는 수출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미래 핵심 에너지”라며 “기술 고도화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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